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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역사 #4] 황산대첩 1

15.04.28 17:07   뉴트리션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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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리션=조선왕조실록 기획 기사팀]


< 요약 >


▶ 1380년 왜구가 하삼도를 침구

▶ 우왕이 태조를 3도의 도순찰사로 삼아 왜적을 정벌하도록 지시

▶ 삼도 원수 배극렴(裵克廉) 등 9원수가 패전, 박수경(朴修敬)·배언(裵彦) 2원수가 전사

▶ 태조가 10배가 넘는 왜구와 싸워 승리를 거두다.


< 내용 >


신우(辛禑) 6년(1380) 경신 8월, 왜적의 배 5백 척이 진포(鎭浦)에 배를 매어 두고 하삼도(下三道,충청·전라·경상도)에 들어와 침구(침입해 노략질)하여 연해(沿海)의 주군(州郡,지방)을 도륙하고 불살라서 거의 다 없어지고,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은 것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시체가 산과 들판을 덮게 되고, 곡식을 그 배에 운반하느라고 쌀이 땅에 버려진 것이 두껍기가 한 자 정도이며, 포로한 자녀를 베어 죽인 것이 산더미처럼 많이 쌓여서 지나간 곳에 피바다를 이루었다.


2, 3세 되는 계집아이를 사로잡아 머리를 깎고 배를 쪼개어 깨끗이 씻어서 쌀·술과 함께 하늘에 제사지내니, 삼도(三道) 연해 지방이 쓸쓸하게 텅 비게 되었다. 왜적의 침구 이후로 이와 같은 일은 일찍이 없었다.


우왕이 태조를 양광(楊廣)·전라(全羅)·경상(慶尙) 3도의 도순찰사로 삼아 가서 왜적을 정벌하게 하고, 찬성사 변안열(邊安烈)을 도체찰사로 삼아 부장으로 하게 하고, 평리 왕복명(王福命)·평리 우인열(禹仁烈)· 우사 도길부(都吉敷)· 지문하 박임종(朴林宗)· 상의 홍인계(洪仁桂)· 밀직 임성미(林成味)· 척산군 이원계(李元桂)를 원수로 삼아 모두 태조의 지휘를 받게 하였다. 


군대가 나가서 장단(長湍)에 이르렀는데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으니, 점치는 사람이 말하기를, “싸움을 이길 징조입니다.” 하였다. 


왜적이 상주(尙州)에 들어와서 6일 동안 주연을 베풀고 부고(府庫,재물창고)를 불살랐다. 경산부(京山府,성주)를 지나서 사근내역(沙斤乃驛)에 주둔하니, 삼도 원수 배극렴(裵克廉) 등 9원수가 패전하고, 박수경(朴修敬)·배언(裵彦) 2원수가 전사하니, 사졸(士卒)로서 죽은 사람이 5백여 명이었다. 


적군의 세력이 더욱 성하여 마침내 함양성(咸陽城)을 도륙하고 남원(南原)으로 향하여 운봉현(雲峰縣)을 불사르고 인월역(引月驛)에 둔치고서, 장차 광주(光州)의 금성(金城)에서 말을 먹이고는 북쪽으로 올라가겠다고 성언하니, 서울과 지방이 크게 진동하였다. 


태조가 천리 사이에 넘어진 시체가 서로 잇대어 있음을 보고는 이를 가엾게 생각하여 편안히 잠 자고 밥 먹지 못하였다. 태조는 안열(安烈) 등과 함께 남원(南原)에 이르니 적군과 서로 떨어지기가 1백 20리였다. 극렴(克廉) 등이 와서 길에서 태조를 뵙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태조가 하룻 동안 말을 휴식시키고는 그 이튿날 싸우려고 하니,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적군이 험지(險地,험난한 땅)를 짊어지고 있으니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려 싸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하니, 태조는 분개하면서 말하기를,

“군사를 일으켜 의기를 내 대적함에 오히려 적군을 보지 못할까 염려되는데, 지금 적군을 만나 치지 않는 일이 옳겠는가?” 하면서, 마침내 여러 군대를 부서를 정하여 이튿날 아침에 서약하고 동쪽으로 갔다. 


운봉(雲峰)을 넘으니 적군과 떨어지기가 수십 리였다. 황산(黃山) 서북쪽에 이르러 정산봉(鼎山峰)에 올라서 태조가 큰길 오른쪽의 소로(좁은 길)를 보고서 말하기를, “적군은 반드시 이 길로 나와서 우리의 후면(後面)을 습격할 것이니, 내가 마땅히 빨리 가야 되겠다.” 하면서, 마침내 자기가 빨리 갔다. 


여러 장수들은 모두 평탄한 길을 따라 진군했으나, 적군의 기세가 매우 강성함을 바라보고서는 싸우지 않고 물러갔으니, 이때 해가 벌써 기울었다. 


태조는 이미 험지에 들어갔는데 적군의 기병과 예병이 과연 돌출하는지라, 태조는 대우전(大羽箭) 20개로써 적군을 쏘고 잇달아 유엽전(柳葉箭)으로 적군을 쏘았는데, 50여 개를 쏘아 모두 그 얼굴을 맞히었으되, 시윗소리에 따라 죽지 않은 자가 없었다. 무릇 세 번이나 만났는데 힘을 다하여 최후까지 싸워 이를 죽였다. 


땅이 또 진창이 되어 적군과 우리 군사가 함께 빠져 서로 넘어졌으나, 뒤미처 나오자 죽은 자는 모두 적군이고 우리 군사는 한 사람도 상하지 않았다. 


이에 적군이 산을 의거하여 스스로 방어하므로, 태조는 사졸들을 지휘하여 요해지(要害地)를 분거하고, 휘하의 이대중(李大中)·우신충(禹臣忠)·이득환(李得桓)·이천기(李天奇)·원영수(元英守)·오일(吳一)·서언(徐彦)·진중기(陳中奇)·서금광(徐金光)·주원의(周元義)·윤상준(尹尙俊)·안승준(安升俊) 등으로 하여금 싸움을 걸게 하였다. 


태조는 쳐다보고 적군을 공격하고, 적군은 죽을 힘을 내어 높은 곳에서 충돌하니, 우리 군사가 패하여 내려왔다. 태조는 장수와 군사들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말고삐를 단단히 잡고 말을 넘어지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조금 후에 태조가 다시 군사로 하여금 소라를 불어 군대를 정돈하게 하고는 개미처럼 붙어서 올라가 적진에 부딪쳤다. 적의 장수가 창을 가지고 바로 태조의 후면으로 달려와서 심히 위급하니, 편장 이두란(李豆蘭)이 말을 뛰게 하여 큰소리로 부르짖기를, “영공, 뒤를 보십시오. 영공, 뒤를 보십시오.” 하였다. 


태조가 미처 보지 못하여, 두란이 드디어 적장을 쏘아 죽였다. 태조의 말이 화살에 맞아 넘어지므로 바꾸어 탔는데, 또 화살에 맞아 넘어지므로 또 바꾸어 탔으나, 날아오는 화살이 태조의 왼쪽 다리를 맞혔다.


태조는 화살을 뽑아 버리고 기세가 더욱 용감하여, 싸우기를 더욱 급하게 하니 군사들은 태조의 상처 입은 것을 알 수 없었다. 적군이 태조를 두서너 겹으로 포위하니, 태조는 기병 두어 명과 함께 포위를 뚫고 나갔다. 


적군이 또 태조의 앞에 부딪치므로 태조가 즉시 8명을 죽이니, 적군은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태조는 하늘의 해를 가리키면서 맹세하고 좌우에게 지휘하기를, “겁이 나는 사람은 물러가라. 나는 그래도 적과 싸워 죽겠다.”

하니, 장수와 군사가 감동 격려되어 용기백배로 사람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니, 적군이 나무처럼 서서 움직이지 못하였다. 


적의 장수 한 사람이 나이 겨우 15, 6세 되었는데, 골격과 용모가 단정하고 고우며 사납고 용맹스러움이 비할 데가 없었다. 흰 말을 타고 창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달려 부딪치니, 그가 가는 곳마다 쓰러져 흔들려서 감히 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군사가 그를 아기발도(阿其拔都)라 일컬으면서 다투어 그를 피하였다. 태조는 그의 용감하고 날랜 것을 아껴서 두란(豆蘭)에게 명하여 산 채로 사로잡게 하니, 두란이 말하기를, “만약 산 채로 사로잡으려고 하면 반드시 사람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하였다. 


아기발도는 갑옷과 투구를 목과 얼굴을 감싼 것을 입었으므로, 쏠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투구의 정자(頂子)를 쏘아 투구를 벗길 것이니 그대가 즉시 쏘아라.” 하고는, 드디어 말을 채찍질해 뛰게 하여 투구를 쏘아 정자를 바로 맞히니, 투구의 끈이 끊어져서 기울어지는지라, 그 사람이 급히 투구를 바루어 쓰므로, 태조가 즉시 투구를 쏘아 또 정자를 맞히니, 투구가 마침내 떨어졌다. 두란이 곧 쏘아서 죽이니, 이에 적군이 기세가 꺾여졌다. 


태조가 앞장서서 힘을 내어 치니, 적의 무리가 쓰러져 흔들리며 날랜 군사는 거의 다 죽었다. 적군이 통곡하니 그 소리가 만 마리의 소 울음과 같았다. 


적군이 말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므로, 관군이 이긴 기세를 타서 달려 산으로 올라가서, 기뻐서 고함을 지르고 북을 치며 함성을 질러,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켜 사면에서 이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크게 쳐부수었다. 


※ 자료 제공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http://www.sejongkorea.org ]

국사편찬위원회 [ http://sillok.history.go.kr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 http://db.itkc.or.kr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사진(자료) 제공 : 문화재청(http://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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